정명석 총재를 처음 만난 것은 1966년 베트남전에서였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생명의 절실함으로 가득한 전쟁터… 오직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열망만으로 하루 하루를 버텼던 그곳에서 정명석 총재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소대본부에서 무전병을 맡고 있었는데 총재는 자원하여 2차 파월로 전쟁터에 온 것이었다. 당시 우리는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틈만 나면 주머니 속 성경책을 읽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는데 정명석 총재도 나도 항상 성경을 비닐에 싸서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나는 어디선가 전쟁터에서 성경책을 가슴에 품고 다니다 총알이 성경에 박혀서 기적적으로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런 연유로 성경을 읽지 않더라도 가지고 다니면 죽을 위기에서 살 수도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항상 성경을 챙겼다. 정명석 총재도 늘 성경을 가지고 다녔는데 나와는 달랐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터에서도 틈만 나면 주머니 속의 성경책을 꺼내 읽었다.
힘들고 궂은 일은 나서서
월남에서 만난 정명석 총재는 선하고 우직한 성품으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2차 파월 됐을 때 소대 본부에서 전령을 구한 적이 있다. 전령이란 소대장의 식사를 챙겨주고, 양말도 빨아주며, 옷도 빨아서 다려주는 그야말로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으로 대부분 신병들이 이 일을 맡는다.
그러나 소대장이 월남 경험이 많은 사람이 옆에 있으면 좋겠다고 하여 정명석 총재에게 전령 역할을 요청했다. 그 당시에 정총재는 고참 병장이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인데 흔쾌히 “네,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 이후 소대장 짐까지 남들보다 두 배는 무겁게 배낭을 짊어지고 다녔다. 물통도 다른 사람은 4통을 갖고 다니면 12통을 갖고 다녔다. 신참도 아닌 고참 병장이. 자기의 할 일도 너무나 충실히 했다. 요즘 사람들이 보면 이해가 안 갈 정도일 것이다.
당시에도 정명석 총재는 글을 잘 썼고 글쓰기를 무척 좋아했다. 나에게 써준 글 중에서 아직도 외우고 있는 문구가 있다. 두 개의 화살표를 그린 그림으로 “출발을 잘하라. 출발할 때는 각기 표가 잘 안 난다. 그러나 갈수록 성공과 실패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처음에 방향을 잘 잡아야 성공한다”라는 잠언 같은 글이었다.
'물을 나눠주는 사람'
정명석 총재와 월남 생활을 가장 오래한 박정배라는 전우가 했던 이야기가 있다. 전쟁터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물이다. 주위에 물이 많다가도 한 번씩 작전을 나가 며칠 동안 산에서 지내게 되면 물이 바닥이 나게 된다. 태양은 뜨겁고 짊어진 짐은 많고 땀은 계속 흘러내리고 목은 바짝 마른다. 그럴 때는 정말 물이 생명줄과 같다. 작전하다가 물이 없어 다른 전우에게 달라고 하면 “내 피를 달라고 해라”할 정도로 잘 안 준다. 정명석 총재는 ‘물을 나눠주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누가 달라고 하면 선뜻 물을 나눠 주었고 심지어는 전쟁터에서 기도를 해도 자기 기도뿐만 아니라 적군을 위한 기도까지 해주었다고 한다.
생명에 대한 진실된 사랑
한번은 내가 왜 적들을 위해 기도하느냐고 물으니 “적들도 우리처럼 집의 부모 형제들이 애타게 살아서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부름 받은 국가가 서로 다를 뿐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데 정말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 당시에도 정명석 총재의 생명에 대한 심성은 진실 되고 남달랐다.
전쟁터에서는 적들은 죽여야 할 대상이라지만 정총재는 포로 한명 죽인 적이 없다. 오히려 자기에게 총을 겨눈 적을 끌어안기까지 했다. 그렇게 끌어안은 적을 소대로 데려와서 죽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소대장이 차고 때리며 크레모아를 터뜨려 버렸다. 죽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사정했는데도 결국 포로를 죽인 것을 알고 안타까워하며 사흘이 넘도록 울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생명의 사람
나는 왜 정명석 총재가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월남전에 참전을 하게 됐는지를 안다. 그가 있을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1차 귀국한 뒤에 부대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엄청나게 많이 죽었다. 그리고 정총재가 2차로 다시 월남전에 참전하면서 귀국할 때까지 6개월 동안은 단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훗날 나는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정명석 총재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 그런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처음 기독교복음선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을 때 놀란 것은 사람들의 얼굴이 너무 밝다는 것이었다. 정명석 총재는 제자들을 위해서 살고 있었다. 20여 만 명이 넘는 제자를 둔 지도자가 자기 집 한 채 없고 땅 한 평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이 곳 저 곳에서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제자를 먹이고 입히는 것을 보았다.
삶을 목격하며
보수파 장로교회 장로를 맡고 있던 나는 정명석 총재의 가르침을 듣고는 더 이상 전에 다니던 교회로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았다. 내 나이에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은 아닌지, 이 길이 제대로 된 길인지 재보기도 수없이 했다. 하지만 정총재의 삶을 목격하면서 이 길을 가기로 마음을 접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고서는 이 모든 일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정명석 총재는 하나님이 직접 역사하는 사람인 줄 알기 때문에 친구일지라도 그를 스승으로 여기며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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