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각에 비하여 하나님의 생각은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높다고 했다. 인간의 생각은 아예 사망이라고 하나님은 엄명하셨다. 인간의 생각으로 살고 간 사람치고 죽을 때 인생을 후회하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다. 아마 후회치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아직도 인생을 모르고 무지한 탓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하겠다. 인간의 생각도 인간보다 한 등급 낮은 동물의 생각에 비하여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높은 것처럼, 하나님의 생각도 하나님보다 한 등급 낮은 우리 인간의 생각보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과 같이 높다고 보는 자는 인생과 하나님, 또 동물의 지능을 깨달은 자이다.
만일 동물이 인간이 시키는 대로 하고, 인간이 생각하는 대로 산다면 얼마나 행복하며 또 신기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랴! 하나님과 인간 사이도 그와 마찬가지라고 깨달아야 되겠다.
나는 이를 일찍이 깨닫고 살았기에 오늘의 인생들의 보편성을 떠난 신의 경지의 생각과 삶을 살아온다고 살아온 것이다. 오늘의 성서의 해석과 깨달음도 하나님적 생각을 깨달음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생각조차 못한 사고를 갖게 된 것이었다.
개미하고 이야기를 해봐라
18살로 기억이 된다.
곡식 짐을 횟골에서 짊어지고 오다 보면 다리골 고개 넘어가는 산 능선에 이르게 된다. 거기서 더 오다 보면 지게 짐을 세워놓고 5~10분 간 휴식했다가 가곤 했던 지게 짐 쉼터가 나온다. 지금은 잔디 성전 맨 꼭대기가 되어 있고, 겨울에 스키 점프하는 위치쯤 된다.
그 때는 인생의 번민과 고민, 인생살이에 대한 생각이 깊었던 때였다.
지게 짐을 세워놓고 인생을 한하며 피곤에 지쳐 웅크리고 앉아 있을 때 개미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저 개미들은 무슨 재미로 사는가? 아무 뜻 없이 그저 무의미한 버러지로 끝나고 말겠지. 나도 그러한 존재로구나. 신은 왜 인간을 창조했을까? 아무 의미 없는 개미는 왜 존재하게 했을까?’
연속 꼬리를 물며 생각이 내 마음에 얽히고 설켰다.
개미를 가련하게 생각할 때 아무 의미 없이 살아가는 힘 약한 개미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루 종일 흙을 파내어도 내 손으로 한 주먹 정도밖에 안된다. 그리고 그나마 사람들이 길을 가다 밟고 지나가면 끝장이고, 그대로 며칠 동안 굴 속에 갇혀 죽을 욕을 보는 것이다.
‘아! 내가 이 아무것도 아닌 개미가 되었더라면 더욱 불쌍한 존재였을 것인데 그래도 다행이다.’
이 때 내 마음과 귀에 선연한 영음이 들려왔다.
“개미하고 이야기를 해봐라.”
그러나 아무리 개미를 불러보고 그 일을 도와주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죽은 지렁이를 개미가 끌고 오는 것을 보고 죽은 지렁이를 들어다 개미 집 앞에까지 갖다주었는데도 오히려 일부는 도망가고 흐트러지는 것이었다. 개미와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결국 신의 영음에 나는 답을 했다.
“하나님, 내가 개미가 되기 전에는 개미하고 통할 수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랬더니 내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그렇다. 네가 개미가 되지 않고서는 개미하고 통할 수가 없고, 개미를 구원할 수가 없노라.”
개미가 좋아하는 것을 그때 그때 알아서 도와주어 개미가 좋아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구원이 될 수가 없다고 깨닫게 되었다.
그 때 그 상황에 빠져서 깊은 시름을 하는데 이어서 들린,
“개미 같은 지구촌의 인생들, 그들과 통하려면 역시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들을 구원하는 데도 이 땅에 사람으로 와야 한다.”
는 음성을 듣고는 깨닫게 됐다.
그래서 이 땅에 기다리던 메시아가 베들레헴 땅에서 났음을 깨우쳐주셨던 것이다.
‘너를 다스릴 자는 베들레헴에서 난다’고 성경은 밝히고 말함을 또 알고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개미를 쳐다보고 도와주어도 개미가 나를 모르듯이, 하나님이 한 등급 낮은 나를, 아니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을 쳐다보아도 모르고 있다고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이 지구촌에 온다고 해도 인간과 통할 수가 없고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통하여 역사하심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개미가 되어 역사해야만 개미 속에서 대화라도 할 수 있듯이 하나님도 개미 같은 우리 인생들에게 역사하시려면 인간을 통해 나타나야 된다는 것을 알았다. 알고 보니 20살 이전에 이미 메시아 강림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은 것이었다. 강림의 기초를 알았던 것이고,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오늘의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 이미 하늘의 상황을 깨우쳐 주었던 것이다.
같은 사람끼리일지라도 그 사람의 입장과 처지가 되어야
같은 사람끼리일지라도 그 사람의 입장과 처지가 되어야 말이 통하고 심정이 통한다.
아무리 하나님의 생각이 인간의 생각에 비하면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높을지라도 하나님이 육신화되어 나타난다면 심정이 통하고 하늘의 언어가 통하고 역사가 통할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 속에 와서 역사하사 다른 사람들을 복음으로 역사하시고 계심을 더욱 깨달아야 하겠다. 구약 4천년 동안 하나님이 온다고 성경에 보면 (사 66:15, 단 7:13) 나와 있다. 유대 종교인들은 하나님을 믿으니까 학수고대 하나님이 올 것을 믿고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구름을 보면서 고개가 꺾어지도록 하나님을 기다렸던 것을 성서를 통해 너무나도 잘 알 수 있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오시지 않아, 유대 종교 메시아 강림관은 깨지고 이루어지지도 않은 채 끝나버렸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을 2천년이나 지난 오늘까지도 모르고 있으니 참 한심한 노릇이다.
인간이 개미가 되지 않고서는 개미를 구원할 수 없고 도와줄 수도 없는 법이듯, 하나님도 인간을 통해서만이 인간구원 사업을 할 수 있고, 인간과 통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나만이 개미들 집 앞에서 이렇게 생각을 한 것 같다.
지금도 그 자리에 오르면 이 곳에서 옛날에 이렇게 했다고 제자들과 이야기를 하며 하나님의 심정과 뜻을 더욱 깊이 깨닫게 한다. 내 고향 곳곳에는 하늘의 섭리의 뜻이 얽히고 설킨 곳이 셀 수 없이 많다. 나만이 걸어온 내 고향 길, 나를 통한 하나님의 그 오묘한 사연들, 나를 가르쳐주신 예수님, 감동시킨 성령님, 근원자와 원존재가 되신 하나님은 나의 영원한 생명의 근원체가 되시어 내가 부르고, 삶의 낙을 삼고, 그 섬김을 나의 기쁨의 근원으로 삼을 영원한 존재자이시다.
나를 따르는 모든 자들도 나와 같이 되기를 목적하고 날마다 가르친다. 이 때로부터 하늘은 나를 계속 깨우쳐주어 10년이나 넘은 후에 시대 메시아 강림을 확실하게 깨닫고 인간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른 메사아론을 세상에 전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강림했어도 몰랐고, 예수님이 내려와 모든 사람 속에 강림하여 일하고 있어도 모르고, 예수님 때처럼 하나님이 온다고 하고 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예언된 대로 오셨고, 구약 유대종교인들이 기다린 일을 했어도 몰랐는데 이 시대도 똑같다는 것이다. 봉사는 일평생 동안 바닷가에 돌아다닐지라도 모래 한 알을 못 보고 죽는다. 앉은뱅이가 일생 동안 한 번 서보지를 못하고 죽는 격과 같다. 신앙의 봉사, 신앙의 앉은뱅이들도 똑같다. 개미는 일생 동안에 한 번도 사람 생각을 못 해보고 죽는다. 하늘의 생각을 가진 자들의 생각을 못 해보고 죽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나 같은 생각은 하나님이 주지 않고는 나도 전혀 하지를 못했을 것이다. 나도 똑같이 저 하늘의 흰 구름을 타고 메시아가 온다고 누구보다도 믿고 기다렸다. 그것은 나의 생각이었고, 종교에 실패한 유대종교인으로부터 들어온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의 교리를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의 생각을 가지고 온 메시아 예수님의 생각을 성경을 읽으면서 절대적으로 받아들였다. 예수님은 하나님 다음 자리 되는 권세자이기에 전적으로 예수님 말만 신격화해 온 것이었다. 그래도 수십 년이나 걸려 하늘 근본의 생각을 교리적으로 굳히게 된 것이었다.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된다는 것은 개미가 인간 생각과 일치된다는 것만큼이나 힘든 것이다. 결국 개미가 되어야 안다는 깨달음과, 하나님은 인간 속에 와서 역사함으로 인간과 대화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세를 통하여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예수님을 통하여 신약 말씀을 하시고, 시대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시대가 2천 년이나 기다린 지상천국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이 진리와 더불어 사는 모든 자와 인생길을 찾는 자들에게 주 하나님의 큰 역사와 성령의 감동 감화하심이 영원토록 충만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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