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명석 목사는

내 생각과 다른 하늘의 생각 [나만이 걸어온 그 길 #24]

칠흑같이 캄캄한 밤길이었다.

 

새벽 2시, 발걸음을 재촉하며 성황당 고갯길을 하늘과 같이 걸어오고 있었다. 어제의 발길이 아직도 끊이지 않은 셈이다. 길의 좌우에는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심은 나무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노방전도를 하고 오는 길은 너무나도 벅찬 발길이다. 돌아오는 길에 내 고향 성황당 고개를 올라오면 항상 나는 한잠 자고픈 마음이 든다. 아마 내 집이 시야에 들어오니 포근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캄캄한 끝에 빗줄기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우산도 없는데 어둠 속에 비가 꽤 쏟아졌다. 다 왔기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빨리 뛰고 싶지만 칠흑같이 캄캄한 밤이라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늘상 다니던 길이라 짐작으로 논두렁길까지 더듬어 왔다. 그 때 앞을 못 보는 봉사가 얼마나 불쌍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봉사가 안된 것에 너무도 감격했다. 그 당시 이웃들과 내 부모 형제들은 밤잠 못 자가면서 전도하러 다니고 기도하러 다니는 날 두고 모두 미쳤다 했지만 신앙으로 볼 때도 영적인 소경이 아니니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너무도 캄캄했던 그 날 밤은 내게 소경의 심정을 깨닫게 한 날이었다고 기억된다.

 

그렇게 소경에 대한 생각과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오는데 내 발에 무엇이 물컹 밟혔다. 비오는 밤이면 길바닥에 흔히 잘 나타나는 구렁이가 밟힌 줄 알고 나는 “으악”하고 소리를 지르며 뒤로 넘어져 주저 앉아 버렸다. 그런데 웬걸, 신음 소리가 나는 것이다. 비상으로 가지고 다니던 성냥불을 켜 보았다.

그 순간, 사람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더 놀랐다.

 

‘웬 사람이…?’

 

종잡을 수 없이 당황하였다.

 

‘귀신인가? 죽어가는 사람인가? 웬 사람이냐?’

 

다시 불을 켜보니 남자 아이였다. 조금 안도감이 돌았다. 

 

 


일단 비가 오니 손을 잡고 일으켜 주었다.

“너는 누구냐? 도대체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

 

하고 물으니 진주에서 왔다고 했다. 그 애의 몸에서 악취가 물씬 풍겼다.

 

“부모가 없어요.”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자기와 여동생을 버리고 시집을 가버렸다고 했다. 자기와 여동생은 거지같이 돌아다니며 얻어먹고 살았는데 어떤 집에서 자기 여동생을 밥해주는 사람으로 데리고 가서 자기만 남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집에서 자기는 남자라고 데리고 가지 않았다고 했다. 게다가 여동생을 어느 집에 떨어뜨렸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하며 울고 있었다.

 



너무 슬픈 일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정말 고아의 아버지셨다. ‘아 하나님이 내 고향으로 오게 하여 나에게 보내주셨구나’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집으로 데리고 와서 자세히 물어보니 여동생은 12살이고, 그 소년은 15살이었다.차도 타고 걷기도 하면서, 얻어먹으며 왔다고 했다. 친척이 있어도 모두 돌보지 않아 둘이 집을 나와 그렇게 얻어먹고 다니다 결국 거지가 되어 말라깽이가 되었던 것이다. 냉수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 입혔다.

 

다음날 아침에 우리 부모님이 보더니만 또 웬 이상한 녀석을 데리고 왔느냐고 했다. 며칠만 있다 갈 것이라고 했다. 나는 사전에 이 소년과 의논했었다.“내 친구 동생으로 대구에서 왔다고 하여라. 형은 나와 같이 월남에 갔다왔다고 하고.”결국은 들통나고 말았지만 며칠 동안 데리고 있다가 식당에 취직을 시켜주어 잘 있게 해주었다.

 

 

과거에 나는 몇 가지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 첫 번째 꿈은 내 고향 석막교회의 장로가 되어 교회에 봉사하며, 농촌에서 일생을 보내다 주 품에 묻히는 것이었다. 두 번째 꿈은 고아와 미친 사람과 환자 등 불쌍한 사람들을 내 고향에 데려다가 회복시켜서 하나님을 믿게 하고, 또 논밭을 사서 과일 나무를 심고 가축 수백 마리를 길러 때를 따라 그들에게 잘 먹여주며 조용히 인생을 살고 싶었다.세 번째는 방송국 아나운서, 뉴스 보도자가 되어 하늘을 증거하며 살고 싶은 명예적인 꿈이었다. 이 꿈은 어떤 꿈보다도 강하였다. 그러다 하늘의 큰 채찍을 맞고 결국 사형선고까지 받고야 말았다. 결국 그 길로 갈 수 없게 하나님과 예수님이 막았던 것이다. 성령님은 한술을 더 뜨셨다. 지금 내가 세계적으로 펼치는 이 복음의 사업은 본래 꿈꾸지 않았던 것이고, 감히 맘도 못 먹었던 일이다. 한 때 부흥강사가 되는 꿈도 꾸었으나, 그것도 내 주제 파악을 해보았을 때 어림 반푼어치도 자격이 되지 않았다.

 

고로 현실의 내가 가는 길은 오직 나 스스로 하는 일이 아니고 내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시켜서 하고 있는 일이라고 누구에게든지 말하는 것이 나의 양심이라고 생각한다.목포 순회가 오늘 밤 7시부터인데, 펜을 잡으니 마음이 급하기만 하다. 밖에는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그야말로 하염없이 쏟아진다.이 펜을 놓고 5시간 달려가야 집회 장소에 가게 된다. 내일은 전남 남부지역 주일 합동예배이고 이어서 순천, 여수, 제주, 대전순회로 이어진다. 다음 달에 이 글을 이어 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