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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목사는

나만이 받은 묵시1(대둔산 독수리봉) [나만이 걸어온 그 길 #14]

여름도 지나고 가을도 지나 인기척 조차 끊어져 버린 혹독한 겨울이 대둔산 용문골 골짝에 닥치면, 물도 없고 골짝이 모두 꽁꽁 얼어붙어 버린다.

대둔산에는 돌문이라 일컫는 좁은 바위 틈길과 두 번째 바위문을 지나면 작은 암자가 좌측에 보인다. 그 암자의 뜰팡을 밟으면서 우측으로 내려오다보면 까마득한 절벽이 나오고, 그 곳을 지나서 20m쯤 올라가면 텐트 하나 칠만한 평지도 나오는데, 이곳이 내가 대둔산이 도립공원이 되기 이전부터 기도하며 수도 생활을 한 중심지이다.

또 한 군데는 여기서 20-30m 정도 바위절벽을 따라 돌아가면 독수리 머리같이 우뚝 솟은 봉이 나온다. 거기는 반평 정도 넓이로 혼자 앉거나 설 수 있는 공간인데, 때로 바람이 세게 불 때는 위험하여 바위를 꼭 잡아야 안 날아가는 곳이다. 그 까마득한 절벽 위엔 천년이나 산 싱싱한 소나무가 나 있어 절벽을 내려다 볼 때나 오르내릴 때 현기증을 막아줘서 좀 안심이 되기도 한다. 35년 전 기도하러 다닐 때도 그만 하였는데 지금도 같은 것이, 나와는 참 오래 사귄 친한 애인 같은 소나무다.  

독수리 목같이 쭉 뻗어 내려온 바위 절경이 끝나면서 솟은 이 봉은 꼭 독수리 머리와 같다. 그래서 머리 봉이라는 영감에 사로잡혀 이름을 짓게 된 것이다.

독수리하면 성경의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이

 

“내가 동방에 독수리를 보내어 나의 모략을 이룬다.”

고 했기에 뜻이 있기도 했다(사 46:11).

 

특별한 기도 때는 이 곳에서 나는 기도를 했다.

깊은 성경의 뜻을 깨달으려 할 때나, 혹은 심정이 괴롭고 고뇌가 몰아닥칠 때, 혹은 집 근처의 가까운 곳에서 기도할 때 인기척 소리가 난다든지, 낮에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될 때나, 집에서 혹여 나를 본격적으로 찾으러 다닐 우려가 있을 때는 위험한 환경을 무릅쓰고 의미 깊은 독수리 머리봉으로 올라갔다. 독수리가 바위 절벽에서 산다더니 내가 그와 같았다. 

지금은 그 곳에 가고 싶을 때 다른 길을 이용해서 다니나, 그 길도 마지막 독수리 봉에 오를 때는 극히 위험한 곳을 거쳐야 된다. 떨어지면 100m 이상 되는 절벽이니 정말 살 수가 없는 곳이다. 그 때 나는 신에 사로잡혀 다닐 때라 그렇게 위험함을 모르고 다녔지만, 요즘은 너무 위험한 것을 깨닫고 극히 조심한다.

당시의 내 차림은 작업복에 실장갑과 방한모를 썼고, 신발은 검은 운동화를 신었으며,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성경 한 권과 찬송가 한 권, 그리고 노트와 펜이 그 때 가진 전부였다.

텐트나 거처할 곳은 입산해서 하산할 때까지 거의 없었다. 텐트는 한 번 친 것으로 기억이 날 뿐인데 그것도 여름이었다. 깔판 방석으로는 가랑잎이나 검부러기의 마른 것을 깔고 앉고나 엎드려서 생활했다. 온 몸이 아프고 쑤셔 댈 때면 맨손 체조를 하고 무서울 때면 호랑이 같이, 사자같이 소리를 질러 산을 울리고 나면 두려운 마음이 물러 갔다. 무엇보다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면 심적 두려움까지 물러갔다.

나는 우연같이 이 골짝을 오르내렸지만 지금에 생각하니 하나님의 절대적인 계획임을 깨닫게 될 뿐이다. 나의 목적으로는 그 골짝에서 그토록 오랜 세월을 보낼 일이 없었고, 절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추워서 기도를 안 하고 그냥 내려온 날이 한번도 없었으니 추위를 이겼다는 것인데, 그것은 내가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35년 전의 일이다. 그 강추위를 그대로 당하였다면 분명 죽었을 것이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옷도 제대로 못 입고, 거처도 없었고, 옛날이 지금보다 더 춥고, 여름엔 더 더웠을 것이 과학적 사실인데 정말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얼어죽지 않은 것이다. 추운 날인데도 기도하거나 찬송을 하게 되면 몸이 뜨거웠고 땀도 많이 흘렸다. 나는 눈보라 북풍한설 찬바람이 씽씽 부는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날도 지새우며, 그 곳에서 하루 이틀이 아닌 젊음의 나날을 보냈던 것이다. 

오늘의 이 말씀을 받고 깨닫게 된 또 하나의 나의 수도 장소였던 곳이 바로 용문골의 독수리봉이다. 하나님이 나를 이 곳에서 훈련시키고 깨우쳐 주셨던 것이다. 

나는 과거에 나를 알아주는 자도 없고, 소망을 걸만한 것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도 없었고, 내 인생을 해결해주는 자가 그 누구도 없었었다. 그래서 ‘희망과 소망이라고는 하나도 없으니 차라리 조용한 산 속에서 쳐박혀 명상하고 또 세상을 피해서 살자. 이 누더기 옷에 못생긴 모습을 세상 어디에다 내놓고, 또 누구의 도움을 받고 살랴. 마음이나 편하게 하고 살자.” 했다. 

그렇게 살을 에이는 겨울밤을 새워 몸부림치며 기도하다 보면, 아침 태양이 동쪽에 힘차게 솟음을 보게 된다. 그러면 환희와 이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저 태양같이 나도 인생을 살아야 될텐데! 뭘 하여야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저 완전한 태양, 뜨거운 태양, 고장나지도 않고 헌것도 안되는 변화무쌍한 태양, 나도 태양같은 인생이 되게 해달라.’

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나도 어둔 세상 살 동안 햇빛되게 하소서.’

 

하며 찬송을 부르면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는데, 그 때 가식없는 나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신 것을 영감의 음성으로 응답받게 되었다.


특히 아침햇빛을 받은 대둔산 바위 절경은 늠름하고 웅장하며, 그 튼튼한 절벽에 꽃이 피고 새들까지 울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게 되고, 정말 고요하고 적막하여 신들이 사는 산같은 깨달음이 온다. 하나님이 조금만 사랑하는 자만 있어도 구경삼아 올 것 같은 장소처럼 말이다. 또한 대둔산에서 기도할 때면 “너는 이 산의 정기(精氣)를 받아라” 하는 영음이 들려왔다. 이 영음은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곧 대둔산의 기질과 특성을

 

"이 산의 기질은 굳건하고 튼튼하여 비바람이 쳐도 요동이 없고 아름다우며 또한 묘함도 있고 장엄함이 있다."

 

고 하셨다. 영계에 사로잡혀 자연은 더 신비스럽게 보이며 황홀지경에 빠져서, 하나님의 그 아름다운 자연 작품을 경지에 이르러 더욱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깨달은 수많은 깨달음과 배운 것들 한꺼번에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