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 듯한 한 여름도
찌는 듯한 한 여름도 고개를 숙였다.
제법 빗방울이 차가운 계절이 오고야 말았다. 누가 재촉하지 않아도 가을비는 온종일 쏟아진다. 이 가을비만 개면 날씨는 추워도 논밭에 나가겠는데 비가 개지를 않는다. 내 마음 자루에 가득 담아놓은 복음의 씨가 미처 뿌려지지 못하여 마음 푸대에서 그대로 싹이 날까 걱정이 되는 날이다. 날이 좋아도 육신을 위해 논밭으로 나가는 바쁜 마음보다는 오히려 복음의 씨앗을 가지고 세상 생명의 마음의 논밭으로 가고픈 마음이 용솟음을 치는 젊음의 시절이었다. 달이 가고 해가 뒤바뀌는 줄도 모르고 날이면 날마다 전도하러 다니는 것만이 내 인생의 전부였고 또 보람이었다.
이 때의 나에게 큰 소원이 있었다면 누가 밥만 먹여주면 일생을 두고 전도하러 다니겠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구원받은 그 가치를 진정 깨닫고 생명에 대한 그 귀중함과 구원의 가치를 근본으로 깨다다지 않고서는 정말 전도하러 다니기 어렵다고 나는 그 때 깊이 깨달았다.
군입대 전인 18, 19, 20, 21세 때
군입대 전인 18, 19, 20, 21세 때 전도에 불이 붙었다.
내가 다니던 시골 교회에서는 나처럼 전도를 다니는 사람들이 없었다. 전도는 하늘로부터 은혜를 덧입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받은 것이 없이는 그 같은 충동감이 일어날 수가 없다. 그 때 내가 다니는 교회의 집사님들이나 같은 동료들은 내가 전도하러 다니는 것을 그리 달갑게 생각지 않았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전도가 얼마나 큰 것인지 그 가치를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또 같이 그 수준에서 이야기하면서 은혜를 나눌 사람도 없었다. 은혜는 모든 사람들이 각각 받는 것이고 또 은혜를 받은 자만이 그 속을 서로 알아주고 심정을 알아주는 것이다. 집에서는 바쁜 때에 전도를 하러 다닌다고 각종 충고와 책망을 했다. 나는 또 각종 이유를 대면서 눈치를 보며 틈틈이 빠져나갔다. 그 때는 아예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고 전도나 실컷 하였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할 때였다. 교회에서도 은근히 나의 하는 일을 반대하고 집에서도 핍박과 반대를 하였으며, 전도를 나가면 또 그 현장에서도 구구나름대로 각종 어려움들이 나에게 큰 문제와 절벽들로 닥쳤다. 모든 것을 다 갖춰놓고 살 수 없고, 아무 거칠 것도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하여도 어려움이 닥치게 되고 거기 따르는 영광과 보람에 못지 않은 문제들이 매일 일어났다. 그러나 생명을 구원하고 돌아오는 그 기쁜 마음은 그 어디에다 비교할 수가 없었고 나에게는 일생을 두고 잊혀지지 않을 일이다. 지금까지도 보람을 느끼고 신앙의 기쁨을 누리는 행복한 일들이었다. 그 반면에 그 때의 문제나 반대자로부터 겪은 심적 고통들은 지금은 기억함도 없이 내게서 사라져 버렸다. 그 때 만일 핍박이나 반대, 혹은 사람들이 반겨주지 않는다고 전도하는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 영혼은 구원함을 받은 그 세계에서 구원을 지키지 못하고 탈락되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가 받는 모든 고통들은 구원받은 그 은혜와 같이 오는 불같은 시험들이며, 또 일시적인 고통과 고뇌들일 뿐이다. 비바람이 무섭다고 농부가 씨를 뿌리지 않거나 농사짓는데 잡초가 많아 김매기가 무섭다고 논밭에 그 좋은 씨를 뿌리지 않는다면 농부는 결국 굶어 죽고 말 것이다.
이렇게 전도에 열성을 부리다 결국 버스 안 노방 전도에 만족을 못하고 기차를 타고 다니면서 전도를 하게 되었다. 누구는 김밥을 팔기 위해서, 또 땅콩과 오징어를 팔기 위해 달리는 기차에 뛰어 들지만 나는 한푼의 금전을 손에 쥐기 위함이 아니라 생명구원에 욕심을 부리고 달리는 기차에 뛰어 올랐다. 전도에 목적을 두고 있었기에 생활로 이동을 할 필요가 있을 때도 기차를 배분 이용했다. 그러나 타는 것도 문제지만 전도하는 것이 문제였다.
처음 기차 안에서의 전도는 정말 당황스러웠다. 첫째 칸에서 맨 마지막 칸까지 멋쩍게 횡단만 거듭했다. 꼭 전도를 할 대상이어서 발을 멈추고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무슨 말을 먼저 하여야 할지 망설이다가 당황하고 그냥 지나가기만 했다. 정말 심정은 불타고 가슴은 찢어지는 듯하였다. 너무 괴로워서 열차에서 몇 번이나 뛰어 내리고 싶었다. 기차 칸마다 사람들은 만원이었다. 결국 내가 죽으면 내가 이같이 천불나게 하고 싶었던 전도를 못하게 되니 죽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밖에 나가 찬 공기를 들이마시고 말 연습을 하고서 또 들어가 돌아다니게 되었다. 기차 한 칸에 앉아 있는 자들을 모두 향하여 전도하겠다고 입을 깨물고 장담하고 들어 갔으나 한 두 사람의 전도에서 끝나고 말았다.
그 밤은 돌아와서 아예 집에 들어가지 않고 내 고향 산너머 다리골 옛 금광 굴로 들어가 밤새 기도하며 울어댔다. 기도로 그 영혼과 육신들이 하나님을 믿게 해달라고 애타게 간구할 수밖에 없었다.
청중에게 내 속에 불타는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온 것이 얼마나 하늘 앞에, 나를 구원시킨 예수님 앞에 부끄럽고 죄송한지 얼굴을 들지 못하였다. 오직 꿇어 간구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문 앞에는 낮에 기차 안에서 보던 사람들이 보이고 청중이 보였다. 그래서 입에서 불이 나도록 외쳤다.
“주 예수를 믿어라. 저 멸망의 지옥불에는 가지 말아야 함이다. 누가 이 세상에 살면서 저 지옥의 고통을 본 자가 있으랴. 누가 이 세상에 살면서 저 영원한 천국의 이상세계를 본 자가 있으랴. 본 자는 나와 같이 입에서 피가 나도록 소쩍새 처럼 밤새 목을 놓아 외칠 것이다. 인생이 일생을 두고 목숨을 걸고서 꼭 하여야 할 일이 있으니 하나님을 믿고 멸망의 저 지옥불을 면하는 길이라”
고 외쳤다.
그러니까 기차 안의 사람만이 아니라 셀 수도 없는 허다한 무리가 온 천지에 끝이 안 보이도록 보였다. 그들은 나의 외침을 듣고 있었다. 더러는 후회를 하면서 울기도 하고 자신들이 하나님을 못믿어 고통받음을 뉘우치며 가슴들을 치기도 하였다. 그 수가 백만도 넘고 천만도 넘는 허다한 천문학적인 숫자의 무리였다.
나도 눈물 콧물을 흘리며 외쳤다.
이 세상은 너무도 초라한 세상, 너무도 죄악의 세상, 너무도 허무한 세상, 거짓과 가증스러운 세상, 저 하늘의 저 천국 하나님의 나라와는 비교가 안되는 세상, 마치 선진국과 저 후진국, 3만년 전의 선사시대 사람보다 더 비교가 안되는 세상이었다. 그날 밤 나는 굴에 들어와 나의 부족으로 낮에 의식하여 전도 못한 것을 회개하며 기도했다. 기도하다 영계에 접해 수많은 영혼들이 흑암에 있는 것을 보고 기도로 전도를 한 셈이었다.
자신이 있을 때는 직접 나가 전도하고 자신이 없을 때는 굴 속에 들어가서 기도로 하나님께 간구하여 나의 구원받은 그 은혜를 갚고 감격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미약하게 자라고 연약하게 자랐음을 깨닫게 한다. 나도 부끄러워 했고 말솜씨가 없었으며 또 전도 나가면 어떻게 말할까 쩔쩔매었던 것이다. 이제는 개인 전도, 가정 전도, 노방 전도, 청중 전도에도 모두 도사가 되었다. 이렇게 될 때까지는 30년의 외침과 수련이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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